침묵.
침묵으로 시작한다. 언어 이전에 침묵이 있었으니까. 모든 언어는 실패한 침묵의 한 형태에 불과하니까.
책상이 침묵이다. 책들이 침묵인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문장을 읽으려고 문장을 쓰려고 책상에 앉는다. 침묵은 입을 벌리고 나를 삼킨다. 나 아닌 것들도 삼킨다. 글을 쓰는 나를 책상은 기다린다. 나도 책상을 기다린다. 도서관에 배치된 책상들은 침묵이 아니다. 침묵은 오로지 단 한 사람을 그 주인으로 갖는다.
어떤 밤은 모든 시간일 수 있다. 어떤 문장은 모든 시간일 수 있다.
─ <<시인의 책상>> 박진성 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