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diary
2015.12.30


머리 속이 꽉 막히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서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잠에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머리가 무거워 다시 잠에서 깼다. 오른쪽 코가 막혀있었다. 다시 일어나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와서 누웠지만 코가 계속 막혀있는 한 제대로 잠이 들 것 같지 않아서 일어나기로 했다. 어제 만나 연하장을 건네 받은 친구의 감사인사 카톡을 읽고 욕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원래 쓰던 폼클렌징을 다 써버려서 동생의 폼클렌징으로 세수를 하고 나와 옷장에서 어두운 빨간색의 목티를 꺼내 입고 화장을 했다. 오늘은 눈화장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아이섀도우를 바르고 싶어서 결국 눈화장은 했지만 라이너로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고 섀도우로 라인을 그리고 그것보다 옅은 색으로 언더를 그렸는데, 오늘 눈화장이 생각보다 예쁘게 돼 만족스러웠다. 추운 날씨에 중무장을 할 기세로 옷을 마저 입었는데, 빨간색 티에 파란색 바지를 입으려고 했다가 너무 안 어울려서 어제 입은 검은색 스키니를 다시 입고 하얀 앙고라 목도리를 칭칭 감고 두꺼운 검정색 코트를 입고 반납해야 할 책 세 권을 집어 넣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기 전에, 어제 대형 서점으로 내년 다이어리를 보러 갔다가 보기만 하고 사질 못해서 집 앞 팬시점에서라도 사려고 했지만 마땅한 물건이 없어서 다이어리는 재쳐두고 검은색 머리띠 두 개를 여태껏 모아온 쿠폰과 현금 300원으로 사고 버스를 탔다. 도서관에 도착해 책을 반납했다. 김영하의 <말하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권,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항상 많이 빌리지만 결국 <말하다>만 겨우겨우 완독하고 나머지 두 권은 펼쳐보지도 못한 채 반납했다. 출발하기 전부터 생각했던 을유문화사의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외>와 원래 읽고 싶었던 김영하 <읽다>는 예약까지 걸려있어서 빌리진 못하고 서가를 슥슥 둘러보다 예전에 희망도서로 직접 신청해놓고 두어 페이지만 넘기고 반납했던 요코미조 세이시 <가면 무도회 1,2>이 있길래 함께 대출을 하고 간행물실로 가 씨네21의 이번 달 호를 읽었다. 2015년 결산특집으로 올해의 한국영화 열 편을 꼽은 페이지를 유심히 읽었는데, 내가 한국영화를 잘 안 보긴 하지만 비평가들이 꼽은 10편 중 내가 본 영화가 하나도 없었다. 홍상수 감독의 <그때는맞고 지금은틀리다>가 1위였는데 언젠가 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올해의 여배우로 뽑힌 전도연의 <무뢰한>도 관심이 갔다. 씨네에서 꼽은 올해의 해외영화에도 내가 본 건 <마션>뿐이 없었다. 1위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였는데.... 왜 안 봤을까. <위플래시>도 보고 싶다. 어쨌든 그렇게 씨네21 이번달 호를 읽고 나와 거울처럼 비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목도리를 다시 감고 도서관 밖을 나섰다. 집에를 갈까 어쩔까 하다가 공항버스가 바로 오길래 망설임을 접고 터미널로 향하기로 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공항버스를 타봤는데 좌석식에 앞문만 있어서 앉자마자 내릴 때 어떻게 내리지? 하면서 이어폰 한 쪽을 뽑고 내리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 금방 도착할 줄 알았는데 퇴근 시간이라 시청 쪽으로 차가 막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가면서 몇 달 전 친구가 결혼했던 예식장도 지나쳤다. 좌석버스지만 부저 누르고 내리는 건 똑같은 데다 터미널이라 내리는 사람이 제법 있어서 다행히(?) 당황하지 않고 무사히 터미널에 도착, 서점으로 들어가 어제 봐뒀던 다이어리를 집어서는 서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이어폰이 50% 세일하는데, 사긴 사야하지만 왠지 미덥지 못해 보기만 하고 집진 않았다. 아델의 <19>, <21>, <25> 앨범이 나란히 진열돼 있었는데 정말 사고 싶은 유혹이 들었지만 잘 눌러 참았다. 문제집 코너에서 요즘 수능 수학 문제집을 훑어보면서 수학은 역시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생각과 함께 학창시절에 이과를 갔더라면, 수학을 더 열심히 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빈 속으로 하루 종일 움직여서 그런지 너무 배가 고파 집에 가야겠단 생각을 하고 계산대에 가 다이어리를 계산하고 서점을 나섰다. 나서면서 스타벅스에 들러 '토피넛 라떼'를 마시고 갈까, 아니면 테이크아웃해서 갈까 고민했지만, 마시고 가면 너무 배가 고플 것 같고, 테이크아웃해서 나가기엔 여전히 퇴근시간이라 버스 안에 사람이 많을 것을 생각해 불편할 것 같아 포기했다. 버스를 타러 육교를 오르는 도중에 보이는 백화점 뒤의 풍경에 어쩐지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겨 오랜만에 사진을 찍어보았다. 버스 안,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마룬5의 "Stutter"에 맞춰 고개를 끄덕끄덕, 입도 벙긋벙긋. 버스에서 내려 화장품 가게에 들르려고 횡단보도쪽으로 가려던 와중에 웬 모르는 여자가 아는 척을 해왔다. 선한 얼굴로 "직장인이세요?". 예전에도 당했던 대순진리회쪽 선교인 것 같아 무심하게 시크한 척 지나치고 때마침 켜진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 화장품 가게로 가 필링젤을 사 집으로 왔다. 너무 배가 고파 늦은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재빨리 집 청소를 하고, 버스에서 내내 서서 왔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길래 에어파스를 뿌렸다.